천하대총일람지도(天下大揔一覽之圖)
天下地圖
표제/저자사항天下地圖
판사항筆寫本
발행사항[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18세기]
형태사항摺鋪1鋪: 地圖(彩色); 128.2 x 156.7 cm, 접은크기 31.2 x 17.4 cm
1장으로 이루어진 채색 필사본의 동아시아 지도다. 모두 펼치면 128.2×156.7cm인 대형의 지도를 31.2×17.4cm의 크기로 접어서 보관하였다. 표지에 적혀 있는 이름은 ‘세계지도’란 뜻의 ‘천하지도(天下地圖)’이고, 지도 위에 적혀 있는 이름은 ‘세계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지도’란 뜻의 ‘천하대총일람지도(天下大揔一覽之圖)’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의 직접 통치를 받는 지역과 우리나라(朝鮮國), 당시엔 독립국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오키나와로 편입된 유구국(琉球國)을 그렸다. 일본은 대마도(對馬島)만 그렸고, 대신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일본이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흑룡강의 북쪽에서 시작되어 제주도의 남쪽까지 이른다. 땅의 형세가 좁고 길며, 조선과의 거리가 543리라고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 왼쪽에는 ‘유구국과 조선국의 거리는 5,430리라고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유구국의 지도 안에는 역사와 성곽, 가옥, 상업, 기후, 농업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천하(天下)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하늘 아래의 모든 땅을 가리키지만 이 지도에서의 천하는 세계의 중심이라 여겨진 중국의 청나라와 조공국인 조선․유구를 포함한 지역을 가리킨다. 지도의 아래쪽에는 ‘중국 13성의 길로 가는 거리’란 뜻의 中原十三省路程(중원십삼성로정)이 적혀 있는데,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北京)으로부터 13개의 성(省)뿐만 아니라, 남경(南京), 청나라의 발상지인 영고탑(寧古塔), 조선국(朝鮮國)까지의 거리(路程)도 적혀 있다. 그 뒤에는 청나라의 가장 높은 지방행정단위인 성(省)이 괄할하는 정치군사 행정단위의 종류와 수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북쪽에는 만리장성이 그려져 있는데, 그로부터 동쪽으로이어진 목책(木柵)은 청나라가 자신들의 근거지였던 만주 지역에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발상지는 압록강 북쪽의 흥경(興京) 지역이었다. 그 서쪽의 성경(盛京)은 청나라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수도였으며, 영고탑은 여진족 전체의 발상지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제작 연대는 지도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수록된 우리나라의 지명 변화로 지도 제작의 상한선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1683년에 신설되는 경상도의 영양(英陽)과 복설되는 순흥(順興), 1684년에 신설되는 함경도의 무산(茂山)이 표기되어 있고 그 이후에 변화된 지명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모양은 1740년대 근대의 측량지도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려낸 정상기의 지도 계통 이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압록강과 두만강의 유로가 일직선에 가깝고 둘째, 독도인 우산도(于山島)가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고려해 볼 때 1700년 안팎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지도에 수록된 정보는 산과 강과 섬의 자연정보를 제외하면 수도(京都)와 고을의 행정정보, 육군기지인 병영(兵營)과 수군기지인 통영 및 수영의 군사 정보가 대부분이다. 고을 중에서 감영이 있는 곳은 노란색의 사각형으로, 병영과 통영은 남색의 원으로 구별해 주었지만 전라도의 병영에는 기호를 표시하지 않았다. 이밖에 병영과 수영 아래의 군사기지인 진보(鎭堡)로서 충청도의 안흥(安興)과 함경도의 후주(厚州) 2개가 더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공재 윤두서 작품…잃어버린 중국지도 찾았다. 2015년 4월
명지대 이태호 교수 연구조사 통해 밝혀져
작품미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동안 소장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작품 중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중국지도’가 미술사 연구의 권위자인 명지대 이태호 교수에 의해 새롭게 밝혀졌다.
공재는 ‘동국여지지도’와 ‘일본여도’를 남긴 이다.
명지대 이태호 교수는 그동안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공재 윤두서의 중국지도를 찾고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물론 공재 윤두서의 중국지도는 새롭게 찾은 것보다는 새롭게 밝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도는 그동안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왔다.
이태호 교수는 지난 2011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된 ‘대동여지도 간행 15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천하지도’는 윤두서가 제작했다는 주장을 제기했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천하지도’는 18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닥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려진 가로 155cm, 세로 128cm의 초대형 지도이다. 이 지도는 1929년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박봉수라는 사람으로부터 3000원에 구입한 지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당시의 그림 값이 보통 30원에서 200원 사이였다고 해 엄청난 고가로 매입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이 지도는 표지에 ‘천하지도(天下地圖)’라 크게 쓰여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 글씨로 ‘부조선유구국(付朝鮮琉球國)’이라 쓰여 있다. 실제로 지도에는 중국지도가 크게 부각돼 있고 우리나라와 유구국이 작게 표현돼 있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이 지도에도 표현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태호 교수는 이 지도가 공재가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지도를 접는 방법이 공재의 작품인 ‘동국여지지도’나 ‘일본여도’처럼 종으로 4번, 횡으로 10번 접어 소책자처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도 뒷면에 2cm 가량 크기로 전서체의 붉은 인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음각의 ‘덕(德)’자와 양각의 ‘필(弼)’자는 덕필(德弼)이라는 소장자가 찍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윤덕필은 윤두서의 조카뻘 되는 인물이다.
윤덕필은 어초은공파 중시조인 윤효정의 넷째아들 윤복(尹復)의 6대손으로 강진에 종택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부터 윤덕필이 이 지도를 소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를 볼 때 윤두서가 그린 지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공재의 아들 윤덕희가 쓴「공재공 행장」에는 윤두서가 “중국여도(中國輿圖)와 아국지리(我國地理)의 모든 영토와 경계, 우리나라 산천의 흐름과 도로의 원근, 성곽의 요충을 남김없이 세세히 살피셨다. 이미 지도를 그리셨고, 지리지를 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태호 교수는 지도 표지에는 ‘천하지도’로 표기돼 있지만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 형성돼 있었던 것을 볼 때 ‘중국여도’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재 윤두서의 회화세계를 조명해 박사학위를 받은 차미애(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씨는 “천하지도는 윤두서의 지도에 나타나는 붉은색 선묘의 도로표시, 노란색이나 파란색 바탕에 지명을 써 놓은 방식, 약간 길쭉한 지명의 행서체가 공재가 그린 지도와 매우 흡사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며 공재가 그린 그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또 공재는 당시 중국의 많은 책들을 섭렵하고 중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동국여지지도’와 ‘일본여도’보다 앞서 이 지도를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글 정윤섭
출처 : 해남우리신문(http://www.hnwo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