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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녹우당문화예술재단

공재 작품 및 자료

윤씨가보

조회 수 21529 추천 수 0 2023.02.13 22: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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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81호 해남윤씨가전고화첩 2권 중 <윤씨가보>에는 산수화 및 산수인물화 23점, 풍속화 5점, 나한도 2점, 인물화 4점, 사생도 3점, 마도 5점, 화조화 2점 등 모두 44점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화첩에는 그의 회화사적 의의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다수 실려 있는데, 풍속화인 <짚신삼기>, <나물캐기>, <선거도> 등은 18, 19세기에 유행하는 풍속화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낙서공 윤덕희가 35세(1719) 9월에 해남 백련동에서 선친 공재공 윤두서의 그림과 글씨를 모아 만든 서화첩으로 보물 제481호이다. 윤덕희는 “윤씨가보尹氏家寶”라고 해서로 표제를 달았다. 이 첩의 앞쪽에는 윤덕희가 전서로 쓴 "윤씨가보尹氏家寶"라는 제명題名과 윤두서가 행서로 쓴 그림 수장품을 감상하는 고상한 취미를 의미하는 “화주청완畵廚淸玩”이라는 제명이 실려 있다. 

 

윤덕희는 이 화첩의 맨 뒤에 “기해구월 장우 백련동 화범사십폭 액사폭己亥九月裝于白蓮洞 畫凡四十幅 額四幅"라고 장황기를 썼다가 나중에 "육"자를 넣어 "화범사십육폭畵凡四十六으로 고쳤다. 그러나 '그림 46폭' 이라는 장황기의 기록과는 달리 이 화첩에는 44폭의 그림이 실려 있다.

 

“필정묵묘筆精墨妙”를 한 면에 한 글자씩 쓴 윤두서의 대자 글씨를 폭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아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와 〈주례병거지도周禮兵車之圖>는 2면을 할애하여 그려진 것이니 46폭이 된다.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 1722년에 해남 백련동을 방문하여 윤덕희가 보여준 《가전보회》와 《윤씨가보》를 감상하면서 이 화첩의 제작경위를 밝힌 글이 있어 주목된다.

 

두타초頭陀草』 18책의 남유록南遊錄」에는 “경백(윤덕희)이 다른 그림을 가지고 취득해 갔던 사람 집에 소장한 것을 바꾸어 와서 그 중 좋은 작품만을 모아 화권을 만들어서 하나의 범필도 없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화첩은 산수, 산수인물, 말 그림, 풍속화, 기물도, 사생화, 도석인물화, 고사인물화, 성현초상화, 화조화 등 다양한 화제들이 실려 있어 윤두서의 회화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기년작은 1711년에 여덟째 아들 윤덕현尹德顯에게 그려준 <우여산수도雨山水圖>와 타계 1년 전인 1714년에 그린 <수하휴식도樹下休息圖>이다. <강안산수도>와 <수애모정도>는 남종산수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하백마도>는 『고씨화보』의 한간의 그림에서 필의를 얻었지만, 말 자체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과 사실적인 묘사를 완숙하게 소화시킨 득의작이다. 춘풍에 흩날리는 버드나무와 완벽한 신체조건을 갖춘 명마를 통해서 아름다운 사월의 생동감을 담아내고 있다.

 

<짚신삼기>, <나물캐기>, <경전목우도耕田牧牛圖>는 윤두서를 조선 후기 풍속화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해 주는 대표작이다. 윤두서의 풍속화는 <경전목우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양에 살았던 1713년 이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글 차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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