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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공가훈 - 기대아서

조회 수 10791 추천 수 0 2021.08.15 12: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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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공가훈(忠憲公家訓) - 기대아서(寄大兒書)

 

 

고산공이 경자년(1660, 현종1) 74세때 유배지인 함경도 삼수에서 큰아들 인미에게 보낸 가훈

 

 

너의 금산(錦山) 삼제(三製) 중에서 내가 보기에는 부(賦)가 가장 나았다. 이등(異等 특등(特等))을 차지해도 괴이할 것이 없는데, 그만 굴욕을 당하고 말았으니 개탄스럽다.

그러나 포서(鋪敍 논술)한 것 가운데 납약(納約)의 아래에 해제(解題 설명)한 사실들이 너무 간략한 폐단이 있었는데, 이것은 흠이라고 할 것이다. 책문(策文)도 좋았다마는 조목별로 제목을 붙인 뜻이 너무 간략하여 알맹이가 없었으니, 이것도 동일한 흠이라고 할 것이다.

대개 장옥(場屋 과거 시험장)의 정문(程文 답안지)은 차라리 너무 상세한 폐단이 있을지언정 너무 간략한 폐단이 있으면 안 되고, 차라리 너무 치밀한 폐단이 있을지언정 너무 소략한 폐단이 있으면 안 되니, 이러한 점을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관심을 두고 고금(古今)의 문자(文字)를 자세히 관찰하여, 전환(轉換)하고 연결하는 묘한 솜씨를 터득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글을 지을 때 흠이 없을 것이다. 만약 고인(古人)의 문법(文法)에 침잠하지 않고, 한갓 문자를 짓는 사이에 조그마한 재기(才氣)만 부린다면, 반드시 무디고 거칠며 지리멸렬한 폐단이 있을 것이니, 이 점도 더욱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시험을 볼 때마다 모두 낙방하는 것이 물론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탓이기는 하지만, 그 근본을 헤아려 보면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것인데, 하늘의 도움을 얻는 길은 오직 선(善)을 쌓는 데에 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아손(兒孫)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낳아 기르지도 못해 제사마저 끊길 걱정이 있으니, 평소에 겁나고 두려운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느냐.

따라서 너희들은 몸을 닦고 근실히 행동하며 선을 쌓고 인을 행하는 것을 첫 번째 급무로 삼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 너희들도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한(漢)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근검절약을 일삼고 백성의 조세(租稅)를 누차 견감(蠲減)하여 자손이 3대에 걸쳐 흥성(興盛)하였는데, 역대(歷代)의 청사(靑史)를 자세히 고찰하면 모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우리 집안의 선세(先世)를 가지고 말하더라도, 고조(高祖)께서 농사일에 근면하고 노복(奴僕)에게 가장 박하게 취하셨기 때문에, 증조(曾祖)의 형제가 우뚝 일어나서 한집안이 융성하였다. 그런데 영광(靈光)의 조부님은 비록 불의한 일은 하지 않으셨지만, 재부(財富) 쪽에 마음을 두신 듯했기 때문에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 그만 끊어지고 말았고, 행당(杏堂)과 졸재(拙齋) 양족(兩族)의 증조도 모두 고조의 집안 법도를 제대로 본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손이 모두 쇠락하였으니, 하늘이 분명하게 보답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다.

고증조(高曾祖)께서는 근검절약으로 집안을 일으키셨는데, 후대의 일을 보면 세속의 화미(華美)한 풍조를 따라서 점차 선세의 기풍과 같지 않아져 쇠미해졌다. 역리(易理)에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을 크게 경계하였고, “자만하면 손해를 자초하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게 된다.”라는 등의 말도 지극한 가르침 아닌 것이 없으니,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기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우리 집안에서 응당 덜어야 할 것들을 생각해서 아래에 기록하였으니, 너는 두렵게 생각하여 소홀히 하지 말지어다.

 

첫째, 의복과 안마(鞍馬) 등 갖가지 몸을 봉양하는 것들은 모두 습관을 고치고 폐단을 줄여야 마땅하다. 음식은 배고픔을 면할 만큼만 취하고, 의복은 몸을 가릴 만큼만 취하고, 말〔馬〕은 보행(步行)을 대체할 용도로만 취하고, 안장은 견고한 것을 취하고, 기물(器物)은 쓰기에 알맞은 것을 취해야 할 것이다.

타고 다닐 때에는 단지 멀리 갈 수 있는 한두 마리를 구하여 행로(行路)에 대비하면 될 것이니, 어찌 꼭 잘 걷는 것을 찾아야 하겠느냐. 청초(靑草)를 벨 때에는 집에 있는 소도 써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하인 집이나 동네 사람의 농우(農牛)를 쓰면 되겠느냐. 사람이 반드시 괴롭게 여길 뿐만이 아니요, 사리에도 전혀 맞지 않으니, 이와 같은 일들은 지금부터 절대로 하지 말고, 단지 한두 마리 복마(卜馬)를 준비해서 실어 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50이 지난 뒤에 납주의(衲紬衣 비단 누비옷)와 저겹의(苧裌衣 모시 겹옷)를 처음으로 지었는데, 향리(鄕里)에 있을 때 네가 납주의를 입은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매우 즐겁지 않았다. 대개 이 두 가지 물건은 대부의 복장인데, 대부가 되고 나서도 이 의복을 짓지 않는 자가 오히려 많다. 그런데 하물며 입하인(笠下人)의 처지에서 대부의 의복을 입어서야 되겠느냐. 이와 같은 복식은 배척하여 착용하지 말고 검소한 덕을 숭상해야 할 것이다.

대개 이런 종류의 물건은 검박한 쪽으로 택하고 사치하는 쪽으로는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 이 기준에 맞게 추구해 나가면, 하나로 열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제갈 무후(諸葛武侯)가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가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원대함을 이룰 수가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참으로 음미할 만하니, 경계하여 잊지 말지어다. 또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공경하는 마음이 태만한 마음을 이기면 길하고, 태만한 마음이 공경하는 마음을 이기면 멸망한다.〔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라고 하였는데, 소홀히 하는 것 역시 태만한 것에 속한다. 태만한 결과가 멸망에 이르기까지 하니, 어찌 가슴이 떨리지 않겠는가. 모쪼록 공경하는 마음을 보존하여 감히 잠시라도 이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말지어다. 부인(婦人)의 의복은 연로하면 명주를 써야 하겠지만, 연소하면 명주와 무명을 섞어서 쓰고, 채단(綵段)은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노비의 신공(身貢)은 고조(高祖) 때에는 1명 당 상목(常木) 1필(疋)을 정식(定式)으로 삼았고, 그 뒤에는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해서 일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정식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사내종은 35자 평목(平木)의 촘촘히 짠 포(布)로 2필, 계집종은 1필 반으로 하되, 가난한 자는 역(役)이 많으면 적당히 감해 주고, 넉넉한 자도 더 받지 않는 이런 방식을 정식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셋째, 앙역노비(仰役奴婢)는 후하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되니. 모름지기 위를 덜어서 아래를 보태 주는 도리를 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집에서 받을 것을 더욱 줄여 항상 노비의 의식(衣食)을 넉넉하게 해 줌으로써, 우리를 쳐다보고 살아가는 자들로 하여금 힘들고 괴로워하며 원망을 품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일 일을 시키는 것도 그들의 힘이 탈진되지 않게 제한하여 정식대로 부려야 할 것이다.

또 노비가 비록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작은 잘못은 타이르고 큰 잘못은 약간 매를 들되, 매양 자기를 위무(慰撫)해 준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자기를 학대한다는 원망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윗사람의 도리는 오직 관대함을 위주로 해야 마땅하다. 부인(婦人)은 성질이 편협하니 형장(刑杖)의 권한을 맡기면 안 된다. 매를 드는 것도 기준을 정해서 감히 지나침이 없게 하고 감히 직접 손을 대어 마구 때리지 않게 하도록 잘 타일러서 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혹 크게 힘을 들일 공사 이외에 기타 사소한 잡역(雜役)이나 일상적으로 심부름 시키는 등의 일은 집안의 노비에게만 맡기고 호노(戶奴)는 부리지 말아서 그가 우유(優游)하며 스스로 본업에 진력하여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동네 사람들은 더더욱 별의별 일로 부려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일은 모름지기 유념해 살펴서 인내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섯째, 기사(祈嗣)하는 하나의 일은 모름지기 《입문(入門)》의 구사조(求嗣條)와 《기사진전(祈嗣眞詮)》을 위주로 하여 근실히 행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 지인(至人)의 말은 믿지 않고 맹인(盲人)의 지시(指示)를 믿는단 말이냐. 좌도(左道 사도(邪道))인 무복(巫卜)의 이야기는 귀를 막고 물리쳐서 부녀자들이 현혹되지 않게끔 하라.

《기사진전》 10편(篇) 중에 말편(末篇)이 기도(祈禱)와 관련된 것인데, 소위 기도라고 하는 것도 이구산(尼丘山)의 뜻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의 부모처럼 적선(積善)한 일도 없이 기도를 한다면, 이 또한 신의 노여움을 더 사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 더구나 무속(巫俗)의 황당무계한 설을 따라서 기도한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유익함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해치는 것이다.〔非徒無益而又害之〕”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니, 가소로울 뿐만이 아니라고 하겠다.

《기사진전》은 개과천선을 첫 번째 급무로 삼고 있는데, 위에서 말한 일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하니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후사(後嗣)를 얻기 위해 기도가 중요하다고 해도 오히려 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그 밖의 신(神)을 섬기는 일이겠느냐. 일체 물리쳐 끊어서 가도(家道)를 바로잡고 다시 격앙(激昂)하여 타락(墮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예전부터 원근의 노비들은 매번 무판(貿販)하는 일을 걱정하곤 하였다. 승노(僧奴) 처간(處簡)이 있을 적에 나에게 극력 말했었는데, 내가 즉시 고치게 하지 못했으니, 후회스러운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남초(南草)의 판매를 명했을 때에도 예전부터 시치(時直)대로 하여 받는 자에게 손해가 없게 하였는데, 뒤에도 물론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만약 서울로 보낼 수만 있다면 더욱 주고받는 폐단이 없어질 것이다. 이것 이외에는 일절 무판하는 행위를 너부터 먼저 하지 말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서 여러 자제(子弟)들의 집안을 통렬히 금하여 일절 하지 못하게 하라. 너는 모름지기 형제를 위한답시고 부형(父兄)을 속이면 안 될 것이다.

 

일곱째, 이번에 비록 배에 짐을 실어 나를지라도 종들을 곁꾼으로 부릴 경우에는, 앙역노(仰役奴) 이외에는 모두 시세에 맞게 가감(加減)하여 곁꾼의 품삯을 지급하도록 하라.

 

여덟째, 성현(聖賢)의 경훈(經訓)은 너희들이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내가 귀를 붙잡고 가르쳤던 바이다. 그리고 《소학(小學)》은 사람을 만드는 틀로서, 학자라면 응당 이것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일생 동안 언어와 문자 사이에서 너희들에게 반복해서 간절히 일러 주었다. 따라서 지금 번거롭게 고해 줄 것은 없겠다만, 때때로 조용히 앉아서 뜻을 모아 한가히 《소학》을 보면 반드시 새로 얻는 것이 있을 것이요, 경전을 가지고 되풀이해서 자세히 완미하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는 모두 일생토록 힘써야 할 일이니 죽을 때까지 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홉째, 우리 집안의 흥망이 이 종이 한 장에 달려 있으니, 절대로 등한히 보지 말 것이요, 손아(孫兒)들로 하여금 가슴에 새겨서 읽고 잊지 말도록 할지어다.

 

 

번역 한국고전번역원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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