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정 서쪽 해민료 자리로 추정되는 자리에 몽천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양주 고산 명월정 자리로 추정되는 터. 산의 중앙 지점에 은행나무가 서있다.
강건너 하남에서 바라본 고산
고산공이 고산(孤山)이라는 호(號)를 갖게된 곳이다.
한강이 홍수가 나면 주변이 물에 잠기고 오로지 이 산 만이 외로이 물위에 솟아 있었다고 한다.
공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 산을 고산이라 명명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현 서울 남양주시 수석동한강체육공원에 위치해 있다.
우의정을 지낸 미수 허목이 지은
해옹(海翁) 윤 참의(尹參議)의 비(碑)에 보면
"고산 선생(孤山先生)이라 하니, 고산은 바로 나라의 동쪽 교외 강가에 있는 구업(舊業 전에 살던 곳)이다."라고 하였다.
또 백호 윤휴의 백호전서 행장(行狀) 중(中)에
"호음(湖陰)에 있는 윤고산(尹孤山)의 정자에 우거하였다."라는 기록도 있다.
해민료에서 우연히 읊으며 다시 앞의 운을 쓰다〔解悶寮偶吟復用前韻〕라는 시에 "해민료는 고산의 명월정(明月亭) 서쪽에 있다."라고 부기하고 있다.
강 건너편 넓은 들녁에 외로이 솟아오른 산의 중앙부분에 명월정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며, 좌측 산자락 끝에 해민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상교수는
"양주의 고산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윤선도의 후기 별서지이다. 1994년 이후 고산연구가와 남양주문화원, 경기도청 향토사료실을 중심으로 고산의 위치에 관해 의문을 갖고 발굴을 시작하였고, 그 결과「고문서집성3, 해남윤씨편」에서 독포정(禿浦亭: 명월정) 및 그 터와 농지관계고문서 등의 발견으로 현 남양주시 수석동이 후기 은거지인 고산으로 밝혀졌다. 한편, 2003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구리․남양주 문화유산 기행」에서는 윤선도 관련 유지를 문화재 자료 및 사적, 기념물 등으로 정의하지 않은 채, ‘고산촌’이라는 이름의 미 분류 문화유적으로 기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