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득록(愚得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1529~1590)의 文集으로, 곤재집(困齋集), 우득록(愚得錄)으로도 호칭되며 論이 중심이 되어서 子部에 分類되었다. 鄭介淸의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困齋)로 본래 지방호족 출신으로 어려서 중이 되어 풍수설(風水說)을 배우고 역학(易學)·율려(律呂)에도 정통하였다.
지봉유설(芝峯類說)
1614년(광해군 6) 이수광(李睟光)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
20권 10책. 목판본. 주로 고서와 고문에서 뽑은 기사일문집(奇事逸聞集)이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 성구(聖求)와 민구(敏求)에 의하여 1634년(인조 12)에 출간되었다. 이것을 숭정본(崇禎本)이라 한다.
≪지봉유설≫의 권두에 김현성(金玄成)의 제문과 이수광의 자서가 있다. 권말에 이식(李植)의 발문이 있다. 이수광은 자서에서 “우리 나라가 예의의 나라로서 중국에 알려지고, 박학하고 아존(雅尊)한 선비가 뒤를 이어 나왔건만 전기(傳記)가 없음이 많고, 문헌에 찾을 만한 것이 적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중략)……오직 한 두 가지씩을 대강 기록하여 잊지 않도록 대비하려는 것이 진실로 나의 뜻이다.”라고 저술동기를 밝히고 있다.
≪지봉유설≫은 총 3,435조목을 25부문 182항목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출처를 밝혔다. 그러나 간혹 빠진 것은 망의(忘意)에 의한 것이다. 인용한 서적은 육경(六經)을 비롯하여 근세 소설과 여러 문집에 이르기까지 348가(家)의 글을 참고하였다. 기록한 사람의 성명은 상고(上古)에서 본조(本朝)까지 2,265명이다. 별권에 기록하였다. 그 중에 간혹 성(姓)만을 적은 것은 저자 이수광이 의도적으로 한 듯하다.
≪지봉유설≫은 권1 천문·시령(時令)·재이(災異), 권2 지리·제국(諸國), 권3 군도(君道)·병정, 권4 관직, 권5∼7 유도(儒道)·경서·문자, 권8∼14 문장, 권15 인물·성행(性行)·신형(身形), 권16 어언(語言), 권17 인사·잡사, 권18 기예(技藝)·외도(外道), 권19 궁실(宮室)·복용(服用)·식물, 권20 훼목(卉木)·금충(禽蟲)의 25부문으로 분류되어 있다.
≪지봉유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서구 문명을 소개한 것이다. 서양 문물에 대한 견문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수광의 관심이 나타나 있다. 이는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로서 이수광의 면모를 나타내 준다. 이수광은 ≪천주실의 天主實義≫ 2권을 소개하면서 천주교의 교리와 교황에 관하여도 기술하고 있다.
≪지봉유설≫을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교언어학적인 시도와 어원의 해석, 어휘의 수집, 언어원리의 지적(指摘), 한글 자형의 범자모방설(梵字模倣說) 등의 내용들이 있다.
≪지봉유설≫ 권8에서 14까지의 문장부(文章部)에 문·문체·문평(文評)·고문·사부·동문(東文)·문예·시·시법·시평·어제시(御製詩)·고악부(古樂府)·고시(古詩)·당시(唐詩)·오대시(五代詩)·송시(宋詩)·원시(元詩)·명시(明詩)·동시(東詩)·방류시(旁流詩)·규수시(閨秀詩)·창첩시(倡妾詩)·가사(歌詞)·여정(麗情)·애사(哀詞)·창화(唱和)·대구(對句)·시화(詩禍)·시참(詩讖)·시예(詩藝)에 대한 그의 다양한 비평문학적 견해들이 피력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주자대전(朱子大全)
중국 송대(宋代)의 성리학자 회암(晦庵) 주희(朱熹)의 문집.
목판본(木板本). 본편 100권, 별집 11권, 속집 10권. 책의 크기는 24.8 X18.4cm, 10행 22자. 1771년 간사(刊寫)되었는데, 간사지 및 간사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회암선생주문공문집(晦庵先生朱文公文集)》 《주자문집》 《주자문집대전》이라고도 한다. 저자가 일생을 두고 저작한 모든 학설을 주로 하고 여러 학자들의 질의(質疑)에 대해 회답한 편지들과 시(詩) ·기(記) ·명(銘) ·비문(碑文) ·묘지(墓誌) 등 문예에 관한 저작들을 함께 모은 방대한 저작이다. 주희 사후 그의 문인(門人)들이 편찬한 것으로, 본편 100권은 보존되어 오던 것을 모은 것이고, 별집 11권은 그의 문인 여사로(餘思魯)가 모은 것인데, 속집 10권은 누구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것들을 모아 완전히 편찬한 것은 송 도종(度宗) 함순(咸淳) 원년(1265)이며 저자의 후손 옥(玉)이 교정하여 《주자대전집(朱子大全集)》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본서의 별집 다음에 있는 유집(遺集) 2권은 1771년(영조 47) 본서를 간행할 때 저자의 시문 중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 우리나라에서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부록(附錄) 12권에는 도통원류(道通源流), 세계원류(世系源流), 부사유언(父師遺言), 유상(遺像), 송사본전(宋史本傳), 문인서술(門人敍述), 제문(祭文), 행장(行狀), 연보원본(年譜原本), 연보별본(年譜別本), 택사서원정방(宅祠書院亭坊), 사원기제(祠院記題), 제편서발(諸編序跋), 편저서목(編著書目), 묵적유기(墨蹟類記), 제명록(題名錄), 당금록(黨禁錄), 변무록(辯誣錄) 등 저자에 관한 후인들의 문장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중종 38)에 이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바 있고, 1575년(선조 8)에도 역시 을해자로 간행하였으며, 그 뒤 각 지방에서도 몇 번 간행한 적이 있다. 비록 후기의 지방간본(地方刊本)이긴 하지만 ‘만기(萬機)’, ‘홍제(弘薺)’라는 정조의 인기(印記)가 있어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자대전차의》 등 《주자대전》의 주석서가 여러 편 편찬되었다.
출처 : 두산백과